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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렵다고 피했던 신곡을 드디어 읽었더니 내 이야기였습니다

by 시리책라이프 2026. 3. 30.


700년 전 단테가 쓴 문장이 지금 내 이야기 같았습니다


어렵다고 알고 있던 책이 있었습니다. 단테의 신곡입니다. 오랫동안 제목만 알고 있었지 실제로 펼쳐본 적은 없었습니다. 그러다 이동진 역으로 나온 한 번은 읽어야 할 신곡을 읽기 시작했는데 생각보다 훨씬 빠르게 빠져들었습니다. 700년 전 이탈리아 시인이 쓴 이야기인데 읽는 내내 지금 내 이야기 같다는 생각이 계속 들었습니다.



저자 소개


단테 알리기에리는 13세기 이탈리아 시인입니다. 신곡은 지옥 연옥 천국 세 편으로 구성된 서사시로 단테가 직접 주인공이 되어 저승 세계를 여행하는 구조입니다. 안내자는 로마 시인 베르길리우스이고 천국에서는 단테가 평생 사랑했던 베아트리체가 길을 안내합니다. 이동진 역자의 번역이 어렵지 않게 읽혀서 생각보다 술술 넘어갔습니다.



숲에서 길을 잃는 것에서 시작됩니다

책의 첫 장면이 강렬합니다.

숲에서 길을 잃은 사람 치고 그때까지 살아서 빠져나온 사람이 하나도 없다는 것을 잘 아는 그는 죽음의 숲을 돌아보면서 역시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 물론 가슴은 여전히 떨렸다.

살아서 빠져나왔는데도 가슴이 떨린다는 게 정확했습니다. 위기를 벗어난 직후의 그 느낌. 안도와 떨림이 동시에 오는 순간을 단테는 두 문장으로 담아냈습니다. 이 장면에서 이미 이 책과 연결된다는 느낌이 왔습니다.



탐욕은 끝이 없어서 날뛰기만 한다


숲을 빠져나온 단테 앞에 늑대가 나타납니다. 베르길리우스는 이렇게 말합니다.

저 늑대는 단 한 명도 여기를 통과시키지 않고 오히려 모조리 잡아먹고야 말거든. 천성이 어찌나 냉혹하고 사악한지 저놈의 탐욕은 끝이 없어서 사람을 아무리 잡아먹어도 배가 고파서 날뛰기만 한다.

늑대는 탐욕의 상징입니다. 700년 전에도 탐욕은 사람을 잡아먹는 짐승이었습니다. 아무리 가져도 배가 고파서 날뛰는 탐욕. 그 앞에서 인간은 지금도 속수무책입니다.



지옥 연옥 천국 세 곳에서 만난 문장들


각 공간에서 다르게 울린 문장들이 있었습니다.

지옥에서 가장 먹먹했던 장면입니다. 지옥에 있는 영혼이 단테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당신은 이 암흑의 세계에서 어서 떠나 아름다운 별들을 볼 수 있는 지상으로 가세요. 가신 후에 이곳 얘기를 하실 때 아무쪼록 우리들 얘기를 잊지 마세요.

잊지 말아달라는 말이 이상하게 오래 남았습니다. 지옥에서도 기억되고 싶은 마음이 있다는 것. 사람은 어디에 있든 잊히고 싶지 않은 것입니다.

연옥에서 가장 찔렸던 문장입니다.

세상 사람들은 좋은 일이나 나쁜 일이나 모두 하늘만 탓하고 있네. 하지만 선악의 판단은 인간의 자유 의지로 잘 할 수 있는 것이기에 세상이 악해진 것은 인간이 나빠서 그리 된 것이라네.

하늘 탓 남 탓을 먼저 하는 이야기입니다. 700년 전이나 지금이나 사람들은 같은 방식으로 살고 있습니다. 그리고 솔직히 저도 그중 하나였습니다.

천국에서 가장 오래 생각하게 만든 문장입니다.

소망이란 미래의 영광을 기대하는 것이며 그 기대는 하느님의 은혜와 자신이 그 이전에 쌓은 덕망에서 생기는 것입니다.

소망은 그냥 오는 게 아니라 쌓아온 것에서 온다는 말입니다. 아무것도 쌓지 않은 사람에게는 소망도 없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이 문장 앞에서 한참 멈춰 있었습니다.



교만 시기 분노 700년 전 죄목이 지금도 유효합니다

연옥에서 단테는 사랑의 반대인 증오가 만들어내는 세 가지 죄를 배웁니다.

사랑의 반대인 증오의 감정은 자기 본위가 강해서 죄가 된다. 첫째 자기가 남보다 훌륭하게 되고 싶다는 교만한 죄 둘째 남들이 잘 되는 것을 시기하는 죄 셋째 남에게 피해를 보면 금세 보복심을 갖는 죄를 말한다.

이 세 가지를 읽으면서 솔직히 찔렸습니다. 교만하지 않다고 할 수 없고 시기하지 않는다고 할 수도 없었습니다. 단테가 700년 전에 쓴 분류가 지금 내 안에도 고스란히 있었습니다.



겉으로 행복해 보이지만 실제로는 불행한 사람들


이 한 줄이 오래 남았습니다.

세상에 사는 사람 중에는 겉으로는 행복해 보이지만 실제로는 불행한 사람이 아주 많다.

SNS에서 행복해 보이는 사람들을 보면서 부러움을 느끼는 분들이라면 이 문장이 다르게 읽힐 겁니다. 단테는 연옥에서 이것을 보았습니다. 겉과 속이 다른 사람의 이야기는 어느 시대에나 있었던 것입니다.



마음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연옥 입구에서 천사가 외치는 소리입니다.

마음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그들의 것이오.

지옥 연옥을 거쳐 천국으로 가는 여정에서 결국 단테가 말하고 싶었던 것이 이것이었구나 싶었습니다. 가진 것 없어도 마음이 낮은 사람이 가장 높은 곳에 간다는 것. 이 문장 하나가 신곡 전체를 관통하는 메시지처럼 느껴졌습니다.



읽고 나서 달라진 것


신곡을 다 읽고 나서 한참 멍하게 있었습니다. 지옥의 어둠과 연옥의 산길과 천국의 빛이 하나의 여행처럼 지나갔습니다.

나는 지금 어디쯤 있을까. 지옥인지 연옥인지 천국으로 가는 길목인지. 단테처럼 걸어가다 보면 어딘가에 베르길리우스가 있고 베아트리체가 있을 거라는 생각을 해봤습니다.

700년 된 책이 이렇게 가까이 느껴진 건 처음이었습니다. 어렵다고 피해왔던 분들께 고전이 처음인 분들께 그리고 지금 내가 어디쯤 있는지 궁금한 모든 분들께 진심으로 추천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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